세비야에서 맞는 첫 번째 아침은 마드리드의 호텔과 달리 좁은 골목에서 일어나 그런지 더욱 정겨운 느낌이다. 부지런히 돌아다녀야 하기에 오늘은 조금 일찍 숙소를 나선다.

세비야의 밤은 자정이 넘어서도 시끌벅적하더니, 아침의 골목은 아직 다들 꿈나라에 있는지 한적하니 조용하다.

골목을 벗어나자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대부분 여행객들로 보이는데, 다들 나와 같은 곳으로 가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멀리 목적지가 보이기 시작한다.

숙소에서 10분 조금 넘게 걸었을까? 사람 구경, 마을 구경을 하며 멀리 보이는 히랄다 탑을 향해 걷다 보니 금세 대성당에 도착했다. 세계에서 세 번째로 큰 성당이라고 하더니 성당을 앞에 두고 서 있으니 규모가 어마어마하다.

하지만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이른 아침부터 공복으로 여행을 시작하고 싶진 않아 숙소에서 나오기 전 찾아 놓은 가게로 이동한다. 아침 햇살을 맞으며 차 한 잔을 즐기는 사람들을 보니 나까지 덩달아 마음이 편안해진다.
De Nata

세비야 대성당에서 도보로 5분 정도 이동하니 골목길 한 편에 DE NATA 라고 적힌 조그만 간판을 발견할 수 있다.


De Nata는 조그만 페스츄리 전문점으로 메인 메뉴로 에그타르트를 판매한다. 가게에 들어갔을 때도 가게 한편에서 에그타르트가 구워지고 있었다. 에그타르트 1세트(6개)와 마실거리를 주문해 가게 앞 난간에 서서 먹는다. 갓 구워진 에그타르트 맛은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세비야 대성당 (Catedral de Sevilla)

허기를 채우고 다시 대성당으로 돌아왔다. 미리 인터넷으로 세비야 대성당과 히랄다 탑을 오를 수 있는 티켓을 예매해와서 바로 입장할 수 있었다.

대성당 내부로 들어오니 가장 먼저 오렌지 나무 정원이 보이는데, 성당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공간이다. 푸른 하늘에 푸른 나무를 보고 있자니 마음에 평온해진다.


성당 내부로 들어와 사람들이 붐비는 곳으로 왔다. 네 명의 사람이 하나의 관을 들고 있는데, 이게 그 유명한 콜럼버스의 관이다. 다시는 스페인 땅을 밟지 않겠다는 그의 주장에 따라 관을 들고 있는 모습인데, 이후에 콜럼버스의 생애가 궁금해 찾아봤는데, 내용이 꽤 재밌다.


콜럼버스의 관을 지나 성당 내부를 천천히 둘러본다. 성당 내 다른 공간이 있는지 외부에서 본 것만큼 내부가 넓어 보이지는 않았지만, 높은 층고에 성당 특유의 분위기가 괜스레 마음을 경건하게 만든다.

세비야 대성당을 둘러보고 히랄다 탑을 오른다. 생각보다 꽤 높은지 한참을 올라 도착했다. 오르는 사람도 많고, 성당 꼭대기에 오르니 이곳도 한창 사진을 찍는 사람들로 붐빈다. 사람들 틈에서 사진을 찍고 세비야 시내를 둘러본다. 히랄다 탑 만큼 높은 건물이 없다 보니 주변에 둘러보기에 좋다.
El Paseillo


대성당에서의 일정을 마무리하고, 식사를 하러 나왔다. 이번에는 따로 알아본 곳이 아니라 거리를 돌아다니다 야외에서 식사할 수 있는 레스토랑(El Paseillo)을 선택했다.


세르베사(맥주)를 한 잔 주문해놓고 음식을 기다리며 순간을 만끽한다. 어느 나라든 여행 다닐 때마다 이런 순간이 가장 행복하다.

음식이 정말 맛있는 건지 분위기에 취해 맛있게 느껴지는 건지 뭐가 됐든 잘 먹었다. 이베리코 구이는 한국에서도 워낙 많이 먹어 그런지 맛있지만 특별함이 없어 다른 메뉴로 하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점심도 먹었겠다, 다음 장소로 이동한다. 세비야 내 즐길 거리가 대부분 도보로 이동하기에 멀지 않다 보니 항상 걸어 다녔는데, 조금은 저런 트램도 타볼 걸 하는 아쉬움이 있다. 가깝다고 하루 종일 걸어 다니는 건 꽤 많은 후유증을 남겼다.



카페인을 충전하며 세비야 곳곳을 걸어 다닌다. 거리가 깨끗하고 나무들 사이를 걸어 다니니 크게 힘든 줄 모르고 걸었다.
스페인 광장 (Plaza de España)


꽤 오랜 시간을 걸어 스페인 광장에 도착했다. 하루 종일 걸어 다닌 탓인지 피로가 몰려오고 있었지만, 광장에 도착한 순간만큼은 그 풍경에 힘든 줄을 몰랐다. 말똥 냄새에 잠깐 제정신으로 돌아오긴 했지만 이곳이 유럽이라는 느낌을 강하게 어필하는 장소다. 덧붙이자면 과거 김태희씨가 플라밍고 복장으로 촬영한 장소가 바로 이 스페인 광장이다.

이날 스페인 광장에서 가장 많은 사진을 찍은 것 같다. 곳곳이 촬영 포인트라 그런지 다른 관광객분들의 도움을 받아서도 촬영을 하며 시간을 보내다 잠시 2층에 올라와 풍경을 구경한다.
잠시 쉬다 보니 광장 건물 중앙에서 플라밍고 공연 소리가 들리기 시작해 자리를 이동한다.

세비야에서 따로 플라밍고 공연은 예매하지 않았는데, 굳이 그럴 필요가 없던 것 같다. 광장에서 그것도 이렇게 가까운 거리에서 플라밍고 공연을 한동안 감상할 수 있었다. 우리나라 국악에 한이 담겨 있듯이 플라밍고 공연에서도 비슷한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남성분과 여성분이 메인 댄서로 번갈아가며 열정적으로 공연을 진행했다.
스페인 광장에서 생각보다 꽤 오랜 시간을 보낸 후, 다시 숙소로 돌아가며 도중에 저녁을 먹기로 한다.
Realcázar

돌아가는 길에 레스토랑이 모여 있는 거리가 보이길래 그 중 Realcázar 레스토랑을 선택했다. 개인적으로 구글 평점을 신뢰하는데, 이번에도 성공적이었다. 서버분께서 굉장히 친절하셨다.

나는 역시나 세르베사(맥주) 그리고 와이프는 오렌지 주스를 주문했다. 오렌지 주스는 주문하면 바로 그 자리에서 착즙해 주시는데 맛있다.


스페인에서 빠에야는 참 많이 먹은 것 같다. 오늘은 새롭게 먹물 빠에야와 간단한 안줏거리로 크로켓을 주문했다. 메뉴를 다양하게 시키고 싶었지만, 빠에야가 2인분 이상 주문이 가능해 어쩔 수 없었다. 먹물과 와사비 소스가 어우러진 빠에야는 정말 최고였다.

맥주가 금세 동이 나서 상그리아인지 틴토 데 베라노였는지 기억은 안 나지만, 추가로 한 잔 더 주문했다. 아무리 마셔도 취하질 않는다.

돌아오는 길은 정신적인 피로와 함께 다리가 비명을 지르느라 힘든 걸음이었지만, 숙소 근처에 오니 이상하게 다시 체력이 샘솟는 기분이다. 그래도 방심하지 말자. 쉬어야 한다.


해가 일찍 저물지 않으니 계속 놀아야 할 것 같다. 그래도 내일을 위해 일정을 마무리하러 숙소로 이동한다. 숙소로 이동하다 길거리에서 이상한 종이를 한 장 받았는데.

종이를 받고 나서 빵 터졌다. 여행 온 커플들의 사진을 촬영하고 결제를 하면 원본을 주는 것 같은데, 너무나 자연스러운 그 사진 덕분에 차마 지갑이 열리진 않았다. 그래도 덕분에 기념품이 하나 더 생겼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