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더 헬멧 룸서울, 기억에 남는 무대 연출
이런 무대 연출은 처음이다. 연극 〈더 헬멧〉 룸서울 에피소드를 보고 왔다. 연극을 본 횟수가 손에 꼽을 정도이다 보니 이런 무대 연출이 종종 사용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매우 신선한 경험이었고, 배우를 바로 눈앞에서 볼 수 있는 소극장도 참 매력적이었다.
더 헬멧: 하나의 이야기, 두 개의 공간
내가 본 룸서울 에피소드는 1987년 민주화 운동을 배경으로 당시 데모에 참여한 학생들과 학생들을 쫓던 백골단 전경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하나의 이야기, 하나의 장소이지만 공간은 두 곳으로 분리된다. 비교적 작은 스몰룸에서는 쫓기던 학생들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흘러가고, 조금 더 큰 빅룸에서는 전경(백골단)들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공간은 때때로 합쳐지지만, 분리된 상태에서는 반대편의 이야기가 잘 들리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있는 공간의 이야기에 집중하면서도 방해되지 않는 선에서 반대편에서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구나 정도는 들리는 소리로 짐작할 수 있어 궁금증을 유발한다.
손 뻗으면 닿을 거리
시력이 좋지 않아도, 망원경이 없어도 육안으로 배우들의 표정을 선명하게 볼 수 있을 정도로 가까운 곳에서 연극이 진행된다. 배우들이 마이크를 착용하지 않았음에도 숨소리까지 느낄 수 있다. 이런 게 소극장의 매력이구나.
연극 초반에는 배우들을 걱정했다. 이렇게 가까운 곳에 관객이 있으면 시선 처리가 어렵지 않을까? 무대를 활보하다 관객과 부딪히는 것을 계속 신경 쓰지는 않을까? 괜히 내가 불안했다. 그러나 역시 배우답게 너무나 자연스러운 연기에 어느새 불안은 사라졌다.
무대가 너무 가깝다 보니 무대가 한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이야기의 흐름 속에서 내가 지금 어떤 배우를 관찰할지 계속해서 결정해야 한다. 어떤 때는 대사를 하고 있는 배우를 보다가도 어떤 때는 그 옆에서 표정을 연기하는 배우를 관찰하기도 한다. 공간이 합쳐진 순간에는 더 많아진 선택의 폭에 고민이 커진다.
연극이 끝나고
연극은 인터미션 없이 70분간 진행된다. 뮤지컬에 비해 짧은 시간이고 한정된 인원의 배우 구성으로 이야기의 흐름은 비교적 단순했지만, 워낙 뛰어난 연기력 덕분에 깊게 몰입할 수 있었다. 오히려 이런 환경이기에 정말 연기력으로 승부할 수밖에 없지 않나 싶다.
반대편 공간에서는 어떤 이야기가 있었을지, 또 다른 배우는 어떻게 연기했을지 연극이 끝나고 드는 생각들을 보면 같은 연극을 왜 두 번, 세 번 보는 사람이 있는지 충분히 이해가 된다. 시리아 배경의 또 다른 에피소드도 궁금하지만, 아마 이번 시즌에는 보기 어렵지 싶다. 그래도 두 에피소드를 모두 관람한 와이프의 평가에 따르면 아무래도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의 룸서울이 더 재밌었다고 하니 만족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