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검진 그리고 첫번째 대장 내시경 후기
올해도 작년과 같이 한 해가 끝나갈 즈음에 건강검진을 받게 됐다. 올해는 사람이 넘치는 연말을 피하기 위해 조금 이르게 예약을 알아봤지만 대장 내시경을 검진 항목에 넣는 순간 선택지가 거의 없었다. 12월에도 겨우 한자리를 발견해 예약에 성공했다. 부지런한 사람들이 정말 많구나.
대장 내시경은 보통 마흔 이상부터 받아도 된다고 하지만 요즘 현대인들 중에 장 건강에 자신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자극적인 음식에 술도 종종 마시다 보니 괜한 불안한 마음에 한 번은 받아보고 싶었다.
검진이 2주 앞으로 다가왔을 때 집으로 장 정결제(하프렙산)가 배송됐다. 대장 내시경을 먼저 받은 사람들에게 후기를 물어보면 누구 하나 준비가 쉬웠다는 사람이 없었다 보니 긴장이 없진 않았다. 그래도 다행인 점은 2시간마다 일어나서 장 정결제를 마셨다는 사람도 있는데, 내가 받은 제품은 전날 오후 7시와 당일 새벽 4시 두 번만 마시면 돼서 뜬 눈으로 밤을 보내지는 않겠다 싶었다.
긴장되는 마음으로 처음 첫 회분을 조제해서 마시는 순간, 생각보다 맛이 나쁘지 않았다. 레몬향이 조금 강한 이온 음료를 마시는 것 같아 하마터면 한 통을 바로 다 마실 뻔했다(15분 간격으로 나눠 마시게 안내되어 있다). 저녁 할당량을 모두 마시고 1시간 정도 지나니 배에서 계속되는 소리와 함께 신호가 온다. 다만 다른 사람들 후기를 보면 화장실만 20~30번 다녀왔다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 정도까지는 아니라 이러다 검진을 못 받는 게 아닌가 걱정이 들었다. 다행히 다음 날 새벽에 장 정결제를 마셨을 때는 전날보다 조금 더 화장실을 다녀오게 되어 검진은 받을 수 있겠다는 생각에 조금 안심이 됐다.
이번 건강검진은 처음 방문한 기관이었는데, 시스템이 잘 되어 있어 놀랐다. 더 이상 차트를 들고 다니지 않고 손목의 밴드를 검진실 앞에서 태깅하는 방식이었는데, 각 검진실도 숫자로 표기되어 있어 찾아다니기 수월하더라. 진료 과목별로 검진실도 많아 대기열이 빠르게 빠져 오래 기다리지 않고 검진받을 수 있었다.
다만 검진 자체는 이전에 방문했던 기관처럼 꼼꼼하게 살핀다는 느낌이 조금 덜했는데, 실제 검진 시간이 꽤 짧아서 그런 느낌을 받은 듯싶다. 검진 장비가 혁신적으로 발전한 게 아니라면 아무래도 물리적인 시간을 무시할 수 없을 텐데, 그 차이가 체감될 정도로 다소 짧았던 점이 아쉽다. 물론 연말이라 사람이 많아서 그럴 수도 있고, 아니면 이전에 방문한 기관이 보기 드물게 꼼꼼했을 수도 있겠지.
그리고 대망의 대장 내시경, 위 내시경과 함께 수면으로 받은 탓에 눈을 떠보니 이미 검진은 끝나 있었고 잠시 후 정신을 차리고 나니 사진을 보여주며 설명을 해주시는데, 깨끗했다. 그동안 계속 마음 한 편에서 걱정되던 곳이었는데, 이상이 없다는 사실에 감사하고 앞으로도 계속 건강이 유지될 수 있도록 몸을 잘 관리해야겠다는 감사한 마음이 생긴다.
검진을 모두 끝내고 수납을 기다리며 잠시 창 밖 풍경을 구경한다. 대망의 첫번째 대장 내시경은 생각보다 힘들지는 않았지만, 일반 검진에 비해 확실히 사람을 지치게 만드는 항목이었다. 이 날은 소진된 체력과 풀린 긴장으로 집에 돌아와 꽤 오랜 시간 낮잠을 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