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orkcation in Melbourne
멜번(Melbourne)으로 워케이션을 왔다. 그동안 워케이션은 제주도조차 예상하지 못했는데, 회사를 옮기고 나니 이렇게 해외로 나오게 됐다는 사실이 아직도 실감이 나지 않는다.
작년 이맘때쯤, 시드니로 여행 왔을 때 (현재 다니고 있는 회사의)채용 전형이 진행되고 있었다. 당시 시드니가 너무 좋아서 합격하면 멜번으로 해외 근무를 와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예상보다 빠르게 바람이 이뤄졌다.
Melbourne
한국과의 긴 비행 거리에 비해 두 시간 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 호주의 시차는 워케이션 장소 선정의 중요한 요소 중 하나였다. 시차로 인해 퇴근 시간이 늦어지긴 하지만, 그만큼 출근 시간도 늦어지기 때문에 오전 시간을 여유롭게 활용할 수 있다. 그리고 영어권 국가이기 때문에 길지 않은 시간이지만, 리스닝만이라도 귀가 조금은 트이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있었다.
숙소는 모두 에어비앤비를 이용했다. 짧지 않은 기간이다 보니 호텔을 이용했을 때의 비용도 비용이지만, 숙소에서 요리(특히 스테이크)를 하겠다는 열망이 컸다. 가능하면 숙소 한 곳에서 워케이션 기간 동안 계속 지내고 싶었지만, 테일러 스위프트가 멜번에서 공연을 하는 바람에 공연 기간 동안은 멜번 대부분의 숙소 예약이 불가했다. 덕분에 중간에 두 번이나 이사를 다녀야 했는데, 숙소가 모두 멀리 떨어져 있어 이동에 꽤나 힘이 들었다.
숙소는 모두 멜번 중심가인 CBD는 아니었는데, 오히려 그래서 더욱 좋았던 것 같다. 주말과 휴일을 맞아 다녀온 CBD는 전형적인 도시의 모습이라 야경은 아름답지만, 복잡하고 시끄러워 여유롭게 지내기엔 어려울 것 같았다. CBD와 그리 멀지 않은 교외는 조금만 벗어났을 뿐인데도 조용하게 여유를 만끽할 수 있는 분위기라 마치 이곳 주민이 된 듯한 기분이 들었다. 물론 무료 트램 구간이 아니라 교통비는 더 들겠지만.
Work & Vacation Balance
부지런히 일어나면 생각보다 시간이 꽤 여유롭다. 한국에서 9시 출근인 경우, 호주에서는 11시 출근이 된다. 아침에는 보통 햇살이 강해지기 전 가까운 공원에 나가 가볍게 산책을 하고 숙소로 돌아온다. 씻고 카페로 나가 브런치와 커피 한 잔을 마시고 돌아와도 출근까지 여유가 있다. 한국에서처럼 일어나자마자 출근을 위해 준비하지 않아도 되니 이것만으로도 마음이 한결 여유로워진다.
단점도 있다. 퇴근 이후에 무언가를 하기 어렵다. 마찬가지로 한국에서 6시 퇴근이면 호주에서는 8시 퇴근이 되는데, 업무를 마무리한다고 시간을 끌면 금세 9시, 10시가 된다. CBD나 명소를 다녀오기에는 오전 시간은 부족하고, 퇴근 이후에는 더욱 어림없으니 본격적으로 Vacation을 즐길 수 있는 때는 주말과 공휴일뿐이다.
다행히 멜번은 흔히 말하는 ‘꼭 가봐야 할 곳’이 많지 않은 것 같다. 대부분의 명소가 거리가 가까워(CBD가 생각보다 작았다.) 한 번의 주말이면 대부분을 다녀올 수 있다. 그레이트 오션 로드와 같이 멀리 나가야 하는 곳도 있지만, 이것도 투어 한 두 개 정도만 신청하면 편하게 필수 코스를 다녀올 수 있다.
숙소에서 업무만 하며 지나간 날들이 많지만, 집이나 회사가 아닌 해외에 나와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무언가를 하지 않아도 만족을 느낄 수 있어 좋다. 짧은 기간의 휴가처럼 시간에 쫓기지도 않고, 매일 같이 2만보를 걸어다니며 여행을 할 필요도 없으니 자연스레 여유도 생긴다. 금전적인 부담은 있지만 전체적으로 휴가보다 워케이션을 통한 여행이 더욱 매력적으로 느껴진다. 다음에 또 이렇게 나갈 수 있는 기회가 생길까?